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자파힛 제국 (문단 편집) == 사회와 문화 == [[자바 섬]] 지역에서는 기본적으로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받아들였다. 다만 인도의 힌두 계급 요소와 문화는 자바만의 오랜 독자적 역사가 진행되며 자바의 실정에 맞게 상당히 변형된 방식으로 정착된다. 물론 힌두교적인 요소를 많이 받아들였기에 이에 따라 의례 참여 방식, 의복, 예법, 언어 사용 양상 등의 사회 관습을 통제하는 상당히 복잡한 규칙이 생겨나 사회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지기는 했지만, 사회 계층 자체의 경계와 상하 관계는 인도처럼 엄격하지는 않았다. 자바 섬에서는 [[시바]], [[비슈누]], [[브라흐마]]를 비롯한 다양한 힌두 신격을 모셨지만 외래 신들 외에도 힌두교 전래 이전부터 자바 지역에서 숭배되던 다양한 토착 신격이 자바 힌두교 문화에 편입되어 숭배 대상이 되기도 했다. 힌두교 종파 가운데는 시바파 힌두교가 주류였는데, 자바에서는 주로 시바의 [[아바타라]]인 '바타라 구루'(Batara Guru)라는 신을 신들의 왕국을 다스리는 군주인 최고신으로 숭배했다. 자바식 시바파 힌두교 체계에서 브라흐마와 비슈누는 [[인드라]](바타라 인드라), [[바유]] 등과 함께 바타라 구루의 자식으로 여겨졌다. 자바의 토착 신격 가운데는 [[시간]]을 신격화한 거대한 파괴의 신 '바타라 칼라'나 구름을 다스리는 교사들의 신 '바타라 삼부', 달의 여신 '데위 라티'[* [[찬드라]]와 별개이나, 데위 라티가 찬드라와 함께 숭배되기도 했다.] 등이 있었다. 순다 지역에서 '냐이 포하치 상향 아스리'라는 이름으로 숭배된 쌀과 풍요의 여신 역시 자바 지역에서 '데위 스리'로 숭배되었다. 후대의 [[마타람 술탄국]](1587-1755) 시대부터 유명해진 남해의 여신 '냐이 라라 키둘'[* Nyai Rara Kidul, 마타람과 그 계승국인 욕야카르타 술탄국에서 군주들의 상징적 배우자. ]과 북해의 여신 '데위 란자르' 역시 그 원형은 마타람 시대 이전부터 존재하던 자바 토착 신이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enataran_temple.jpg|width=44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andi-sukuh-mesoamerican-architecture.jpg|width=510]]}}}|| || 파나타란 사원 || 수쿠 사원. 마자파힛 시대의 보기드문 피라미드형 사원이다. || 자바 섬에서는 각기 믿는 종파에 따라 다양한 연례 행사가 열렸다. 마자파힛 제국의 수도 마자파힛에는 시바파 힌두교뿐 아니라 불교, 비슈누파 힌두교 사원과 성직자가 존재했으며, 이미 14세기에 수도 마자파힛에서 이슬람교도가 상인 또는 주민으로서[* 오늘날 순례지 내지 여행지로 유명한 마자파힛(트로울란)의 트롤로요(Troloyo) 묘지에서는 14세기부터 매장된 19명의 무슬림 이름을 식별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인도 태생의 이슬람 선교사 자말룻딘 후세인 알아크바르(Jamaluddin Hussein Al-Akbar)는 각지를 여행하다가 1376년에 마자파힛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거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러 목적으로 출가하여 수도 생활을 하였는데, 이는 왕을 비롯한 고위 귀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양한 남성과 여성 수도자회가 있었고 일시적인 수도 생활을 끝내고 속세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자바 지역에서는 고대와 중세에 일상 생활의 다양한 측면에 관한 문헌이 작성되고 공예품, 석상, [[테라코타]] 등의 유물이 만들어졌는데, 이에 기반하여 오늘날 의복, 관습, 예법, 의례 등에서 결혼과 섹슈얼리티와 같은 주제에 이르기까지[* 가령 마지막 주제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Creese, Helen. ''Women of the Kakawin World''. New York: Routledge, 2015.] 중세 자바인의 생활을 재구성할 수 있다. 최근에는 여성사 측면에서도 자바 고대사 및 중세사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동남아 일대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남편과 독립적인 경제권을 따로 갖는 일이 드물지 않았는데, 마자파힛 제국 시대의 자바 섬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907년에 자바[* 논문에서는 단순히 "자바"라고만 하는데, 마타람 왕국 또는 순다 왕국 시대다.]에서 반포된 한 칙령은 사망한 부인의 채무에 대해 무지한 남편은 부인의 부채를 대리 상환할 필요가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Barbara Watson Andaya, "Studying Women and Gender in Southeast Asia," ''International Journal of Asian Studies'' 4 I (2007): 113-136.] 주로 수도 마자파힛(트로울란) 근처를 중심으로 하여 동부 자바 전역에서 발굴되는 수많은 힌두-불교 사원 건축물 또한 많은 경우 마자파힛 시대의 것이다. [[보로부두르]]로 잘 알려진 고대의 [[마타람 왕국]] 이후 자바에서는 마타람의 것에 비할 만한 대규모의 사원 건축이 좀처럼 시도되지 않았다. 다만 마자파힛 제국 시대 들어서 워낙 번영도가 높았기에 마타람 왕국 시대에 비견될만한 작품들 몇몇이 탄생하긴 했다. 파나타란 사원은 예외적으로 넓은 부지에서 마자파힛 시대인 14세기부터 15세기 중반까지 주로 증축된 대규모 사원으로(최초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정교한 부조는 자바식 힌두-불교 시각 예술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밖에도 다양한 마자파힛 시대 사원들이 남아 있지만 대체로 고만고만한 것들이 많은데, 특징이 뚜렷한 둘만 예로 들어 본다. 자바 중부의 수쿠 사원은 15세기 전반[* 입구의 석문에는 1437년으로 적혀 있음]에 세워진 사원으로, 고대 마타람의 [[보로부두르]] 이후 자바에서 극히 드문 [[피라미드]] 모양의 사원이며 해발 1186m의 라우(Lawu)산 사면에 위치한다. 츠타 사원도 라우산 사면의 해발 1495m에 위치하며, 다른 유명한 자바 사원들과 달리 자바 고유 모티브의 활용이 돋보인다. 또 츠타 사원은 마자파힛 세력이 쇠퇴하던 말기인 1479년 무렵 건축된 것으로, 자바 중·동부에서 마자파힛 시대의 마침표를 찍는 사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